순천 예술사 기록 자료집 1 연극 미술 영화 사진 1900-1945 조사 편저_예술공간돈키호테(박혜강 이명훈) 
편집서문
1. 근대 이전, 순천 지역사 기록의 문맥 역사학적으로 지역의 역사는 전체사인 국사편찬 과정에서
국정에 영향을 끼친 중대 사건이나 관련 인물을 언급하는 내용에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는 지리지(地理志), 지도의 제작에 필요한 정보를 조사 취합하는 과정에서도 지역의
역사 자료가 수집되기도 했다. 전체사의 일부분으로서 지역사는 대개 간략하며 통치자의 관점에서 문맥이
형성되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인식이 왜곡 되기도 한다. 이러한 국사편찬 작업에 호응하면서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
또는 지역 유지들의 노력으로 지역사가 편찬되기도 했다. 지방관이 편찬한 읍지나 향교, 서원, 사찰과 같은 지역 교육, 언론, 종교 단체가 편찬한 연혁지와 기록물이 있고, 문집과
같이 개인과 그 인맥과 후학, 가문에 의한 편찬사업도 꾸준히 이루어져왔던 것이다. 이들은 전체사가 누락했거나 생략했던 지역사를 보다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 1618년
지봉 이수광이 순천부사로 재임했던 동안 이 지역의 최초의 읍지인 『승평지』를 편찬했는데, 이것은 이수광이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보고 그 내용이 간략하여 자신이 보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광 이후, 약 100년의 시간이 지난 1729년에는 부사 홍중징이 『증간승평지』를 편찬하였다. 이것은 『승평지』의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달라진 내용을 새롭게 보충한 것이다. 이후에도 ‘신증’이라는 명칭으로 지역의 변화상을 조금씩 갱신해왔던 것이다. 그 전통은 19세기를 거쳐 1924년 순천향교에서 펴낸 『신증승평지』까지 이른다. 개인이 편찬한
기록물로는 1784년 조현범이 지은 『강남악부』가 있는데, 이
책은 이수광의 『승평지』에 호응한 것으로서 지역사를 문학의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2. 근대기 ‘예술’과 ‘문화’의 등장 ‘예술’은 ‘문화’라는 말과 함께 19세기 개화기에 일본이 서양의 용어들을 번역한 새로운(낯선) 개념이었다. 이것은 영어의 아트(art),
컬쳐(culture), 독일어의 쿤스트(Kunst), 쿨투어(Kultur)의 번역어로서 그 의미에 해당하는 한자어를 예(藝)와 술(術)과 문(文)과 화(化)를 조합하여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예술’의 경우, 초기에는 공예(산업디자인)와
순수예술(파인아트)을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였는데, 점차 ‘순수예술’로 규정하였고 그것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문화의 개념은 4자성어에
익숙한 한자문화권에서 ‘문명개화(文明開化)’나 ‘문치교화(文治敎化)’로 풀이하여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 ‘문명개화’의
의미로서 ‘문화’는 서양의 신문물과 문명, 그것의 수용을 통한 변신을 의미한다. ‘동도서기(東道西器)’의
논리가 잠시 설득력을 가졌음을 생각해보라. 이 때의 문화의 의미는 ‘서구화(westernization)’ 또는 전 시대의 생활 양식과는 전혀 다른 근대화(modernization)의
의미로 종종 받아들여졌다. 근대기 이후에 등장하는 ‘문화oo’의
용법들은 대개 그러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두 번째, ‘문치교화’의
의미로서 ‘문화’의 해석에 근접하는 한자권의 개념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풍속(風俗)’이 있으며, 학술적으로는
‘풍류(風流)’와 ‘풍화(風化)’가 있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지리지나 읍지에 등장하는 ‘풍속’의
의미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시대 통치 이념이었던 유학은 글자-문(文)을 매개로 인간됨의 본성을 밝히고 이를 통해 일반의 풍속을 교화해
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통치의 맥락에서 ‘미풍양속’을 권장하고 그 모범들을 제시하는, 일련의 ‘교화’를 목적으로 풍속을 단속한다는 것이 ‘풍화’의 의미로 정리할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친 조선 중후반에 충신, 효부, 효자, 열녀에 관한 미담이 꾸준히 발굴된 것이나 그에 대한 기념사업(사우와
정려의 설치)이 전국 각지에서 경쟁적으로 활발했던 것은 어찌 보면 조선시대의 ‘문화정치’의 행태라 볼
수 있다. 3. 순천 예술사 기록의 문맥 조선시대 읍지나 문집 등에 오늘의 문화나 예술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읍지에 기록하고 있는 풍속(風俗)은 그 지역의 ‘풍속’이 어떠한지를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지역의
주요 토산(土産)물을 비롯해 문화시설이라 할 수 있는 누정(樓亭), 교육시설인 학교(學校), 종교시설이자 오늘날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사찰(寺刹), 사묘(祠廟), 고적(古跡), 오늘의 공방(스튜디오)에 해당되는 공장(工匠), 문학작품과
출판에 해당되는 제영(題詠)과 잡저(雜著)의 항목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분류 항목에서 근대적인 예술의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881년에 발행된 『순천속지』에서의 ‘문학(文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이때 '문학'은 '학문'으로도 해석된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문학’에 이어 ‘서화’의
항목이 신설되기 시작하였다. ‘서화’가 ‘미술’로 대체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65년 발행된 이 지역의 지방지인 『삼산이수』는 당시 ‘문화’와 ‘예술’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기록 내용은 (1)문화시설, (2)문단(해방
후), (3)각종 언론지사지국, (4)순천가(벽소 이영민 작) (5)송광사 내외 심육경시조(인암 이봉록 작)으로 그 분량이 3쪽을
넘지 않는다. (1)문화시설로는 공보원, 공회당, 극장, 라디오소유가구, 유선방송, 인쇄소, 신문지사지국, 신문구독자수를
파악하고 있다. 라디오를 가진 집이나 지방의 신문지국사무실이 문화전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2)문단에서는 네 사람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명화
김명제(동양화), 시단 이봉록(현대시), 필원 이영민(서예), 악단 박노식(예술인)을 소개하고 있다. 단 네 사람을 소개하고 있어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만큼 문화예술에
대해 무관심했음을 엿볼 수 있다. 순천 예술사의 기틀은
70년대에 이르러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순천승주향토지』(순천문화원, 1975)는 그런 면에서 의미 있는 기록물이다. 제5편 문화는 교육-종교-언론-문예-체육으로 분류하였다. 제4장 문예는 제1절
문학(1.고문학 2.현대문학 3.향토문학 4.교지), 제2절 예술(1.서예 2.음악 3.미술 4.연예), 제3절 이 지방의 민요, 제4절
시군민의날로 구분하여 기술하였다. 1997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직후 편찬된 『순천시사』(순천시, 1997)는 과거의 것보다 학술적이고 종합적인 성격의 편찬물이다. 그러나 『순천시사』 2권 「문화예술」에서
기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문학을 제외하고는 다른 예술 장르에 대한 서술이 전무하고
전통예술과 문화재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순천예총이 2001년 『순천예총20년사』를 펴내면서 각 장르 예술의 연혁과 활동을 정리하고 있다. 순천미술협회는
더 나아가 2012년에 『순천미술40년사』를 펴내 보다 풍성한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반면, 대체적으로 모든 기록물에서 일제강점기, 1960년대 이전의 기록 부분이 아예
없거나, 대단히 취약하여 순천 예술사의 문맥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공통적이다. 4. 순천 예술사 아카이브 기초 조사 그러한 문제 인식에서 이번 순천 예술사 기록에 관한 자료
연구조사는 순천지역 예술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자료들을 최대한 발굴해서 비어있는 부분은 채우고 오류는 수정해서 순천 예술사를 좀더 촘촘하게 엮어내는
데 집중하였다. 또한 지나간 순천에서의 예술활동들을 다시 조명함으로써
지금의 순천의 문화와 예술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성찰하는데 필요한 근거로 쓰이길 기대한다. 조사
내용과 범위가 방대하여 이를 단계적으로 나눠 조사연구한다는
계획을 미리 밝혀둔다. 이번 1차 연구조사는 2019년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간 진행되었다. 이번에 기록 자료가 공개되는 부문은 연극, 미술, 사진, 영화 4개 장르이다. 시기는 20세기
초부터 1945년까지이며, 미술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까지의
기록을 수집 정리하였다. 나머지 시간대와 다른 장르는 2차 연구조사부터 순차적으로 엮어나갈 예정이다. 2019. 09. 예술공간돈키호테(박혜강·이명훈) * 일러두기 조사범위, 시간의 설정 본 연구조사는 시간 범위를 크게 20세기(1900-1999)로
한정했다. 조사 기간과 대상을 고려하여 이를 다시 세 개의 시간대로 분류하였는데, 제1차 조사는 1900년대부터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제2차
조사는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제3차 조사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로
총 3차에 걸쳐 순차적인 조사작업으로 계획되고 제안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해당 기록의 맥락이나 조사연구자의 판단에 의거하여 조사 범위에 대해 유연성을 인정했다. 조사대상, 장르의 구분 현대예술은 점점 장르구분이 모호해 지고 있고, 협업과 통섭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개념·형식화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조사 착수 단계에서는 예술의 각 장르를 세분화하지 않고 ‘시각예술(Visual Arts)’과 ‘공연예술(Performing Arts)’로
크게 구분하여 순천예술의 기록자료를 정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분류 개념이 일반에 통용되어 있지
않다는 점과, 20세기 한국 예술계가 장르 중심으로 자신들을 기록해 왔던 점을 고려하여 편이상 20세기의 분류 개념을 따랐다. 조사 장르는 국악(한국전통음악), 무용, 문학, 미술, 사진, 연극, 영화, 음악(서양음악, 클래식, 현대음악) 총 8개 부문이다(그렇다고 장르 개념이 명확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해석에 따라 서화와 미술이 구분되며, 서예, 사진, 공예, 건축 등이
미술에 포함될 수도 있지만 대개 지역에서는 이를 개별적으로 서술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번 1차 조사에서는 연극, 미술, 사진, 영화의 20세기 초중반 기록자료를 우선 수집하였다. 조사방법 조사방법은 우선 공식 순천 지역사인 『순천승주향토지』(순천문화원, 1975)과 『순천시사』(순천시, 1997)를 큰 줄기로 삼고, 『순천예총20년사』(순천예총2001), 『순천미술40년사』(순천미협, 2012)와 같은 지역 예술단체가 발행한 기록물을 가지로 삼았으며, 그 다음 신문기사, 개인의 활동기록, 인터넷검색 등으로 가지에 잎들을 붙여 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순천 예술사의 기술이 해방 이전의 기록을 상당부분 누락하고 있거나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 예술사가 아닌 한국 전체 예술사를 통해 맥락을 잡고 낙엽을 줍는 기분으로 1차 기초 자료를 수집하는데 집중하였다. 기록 내용의 조각조각(텍스트)을 찾아내 이어 붙여 큰 그림(컨텍스트)을 그린다는 방식이다. 조각에 해당하는 단편적인 기록들은 당대의 신문기사에서 가장 많이 수집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러한 조각조각 하나 하나에 대한 독해를 통해 끊긴 맥락을 찾고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목차
제1장 순천 연극사 기록 (1900-1945)
016 [연01] 1920년 순천청년회 창립 행사에 연극 공연 018 [연02] 1921년 선암사불교청년회 연극단 석가여래팔상의 내력 공연 020 [연03] 1922년 갈돕회 순회연극단 순천 공연 023 [연04] 1923년 순천청년소인극 순천어시장 공연 024 [연05] 1923년 조선여자교육협회 순회연극무도단 순천어시장 공연 028 [연06] 1923년 순천노동야학회 연극단 순천어시장 공연 030 [연07] 1923년~1924년 순천노동야학회 연극단 여수, 제주, 통영 공연 034 [연08] 1924년 순천지방청년회 연극단 순천어시장 공연 036 [연09] 1924년 순천고학생상조회 순회연극단 곡성 공연 038 [연10] 1924년 영신여학원 순회연극단 순천어시장 공연 040 [연11] 1925년 호남은행 순천지점 신축 낙성식에 예기(藝妓)의 연극 공연 044 [연12] 1925년 순천아동강습회 소녀가극단 벌교 공연 046 [연13] 1926년 전남동부청년연맹 창립 1주년 기념 벌교에서 음악회와 소인극 048 [연14] 1931년~1934년 낙안면에서 ‘프롤레타리아연극’ 수 차례 상연 051 [연15] 1932년~1935년 순천의 연극 단체 백양사(白楊舍)의 활동 056 [연16] 1932년 순천매산남학교 학생 연극 공연 058 [연17] 1938년 순천에 극단이 밀려들다 060 [연18] 1938년 극단 예원좌(藝苑座) 순천극장에서 공연
제2장 순천 미술사 기록 (1910~1950)
068 [미01] 1910년 순천남교 1회 졸업생 송헌 김천동/벽소 이영민은 교사로 부임 072 [미02] 1911년 채용신이 황현의 초상을 그리다 074 [미03] 1913년 미국선교사 플로렌스 크레인, 순천선교부에서 미술 지도 078 [미04] 1915년 염재 송태회가 「송광사지전도」를 제작 080 [미05] 1917년 설산, 선암사 경붕당익운대선사 진영 제작 082 [미06] 1919년 김일섭, 송광사에서 불화입문 086 [미07] 1927년 성제 김경섭, 순천에서 서화전 성황 088 [미08] 1930년 청파 전형윤, 순천호남은행에서 서화전 개최 090 [미09] 1931년 플로렌스 크레인, 『Flowers and Folk-lore from far Koera』 출판 100 [미10] 1932년 성파 하동주, 순천서 서화전 개최 102 [미11] 1933년 순천공보에서 아동작품전람회 개최 104 [미12] 1933년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전국학생작품전람회에서 매산여학교 학생 입상 108 [미13] 1933년 플로렌스 크레인, 서울 동아일보사에서 회화전람 개최 110 [미14] 1934년 동운 김용배, 서화전 개최 112 [미15] 1935년『조선호남지(朝鮮湖南誌)』에 순천 서화가로 두남 정영서 기록 114 [미16] 1937년 고 김종익의 동상건립을 사은기성회에서 계획 116 [미17] 1937년 전남동부칠군연합 축산공진회에서 각종 전람회 개최 118 [미18] 1939년-1940년 벽소 이영민, 각종 서도전람회에서 입선 120 [미19] 1942년 목재 허행면, 순천에서 첫 개인전 122 [미20] 1943년 순천중학교에서 미술지도교사로 다나카 테츠오(田中鐵夫) 재직 124 [미21] 1944년 월북화가 이석주, 순천 개인전 126 [미22] 1948년 충무사 낙성, 이순신장군 영정을 이당 김은호가 맡음 128 [미23] 1949년 취봉 이종원, 개인전 개최 130 [미24] 1949년 순천중학 미술교사 곽용배, 제자와 양화전 132 [미25] 1950년 해룡 충무사에 이순신장군 영정 봉안식 거행 134 [미26] 1950년 조선대 주최로 전남 각지 순회 이동미술전 개최
제3장 순천 영화사 기록 (1900~1945)
142 [영01] 1921년 순천에서 열린 축산품평회에서 활동사진 상영 144 [영02] 1922년 순천에서 재외동포위문 순회환등영사 강연회 150 [영03] 1922년 순천에서 목포청년회 활동사진대 순회상영회 152 [영04] 1922년 순천에서 통영청년단 활동사진대 순회상영회 154 [영05] 1922년 순천에서 군산교육장려 활동사진대 순회상영회 156 [영06] 1922년 순천공립보통학교 낙성식 행사에 활동사진 영사 158 [영07] 1923년 순천에서 인광회(隣光會) 환등단 순회상영회 160 [영08] 1924년 순천향교에서 군수에게 활동사진기계 구입비 삭감을 요구 162 [영09] 1925년 순천에서 부산키네마회사의 작품상영 164 [영10] 1928년 순천에서 제주도중앙유치원 활동사진대 순회상영회 166 [영11] 1930년 순천에서 극동영화협회 순업부 상영회 168 [영12] 1933년 극장순천구락부 신문광고 170 [영13] 1933년 순천경찰서 주최 위생전람회에서 활동사진회 174 [영14] 1934년 '삼남(三南)수해 활동사진' 순천극장에서 공개 176 [영15] 1935년 순천보통학교동창회가 영화대회 개최 178 [영16] 1937년 순천극장 개관 182 [영17] 1938년 순천극장에서 연극상연 도중 수도관 동파로 물난리 184 [영18] 1938년 순천극장에서 신문사 주최 강연회 186 [영19] 1938년 순천남소학교에서 활동사진대회/순천극장에서 예기명창대회 188 [영20] 1939년 순천에서 철도사고방지 선전영화회
제4장 순천 사진사 기록 (1900~1945)
196 [사01] 1910년대~1930년대 미국남장로교 순천선교부의 사진 기록 200 [사02] 1913년 일본인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蔵)의 순천조사와 사진 기록 206 [사03] 1913년『보고의 전남』에 소개된 순천 210 [사04] 1920년대~1948년 벽소 이영민의 국악인 사진 기록과 비너스사진관 216 [사05] 1925년 별량면 출신 김삭수, 일본 후쿠오카 삼원사진관에서 근무 218 [사06] 1930년 도립의원 앞 태양사진관 주인 박학래 사진사 220 [사07] 1930년『조선국세조사보고』에 기록된 순천 거주 사진사 현황 224 [사08] 1932년 일본인 건축사학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의 순천조사와 사진 기록 228 [사09] 1936년『경전선 북부 상동 순천간 건설공사 준공기념』 사진첩 230 [사10] 1937년 순천심상고등소학교, 일본 천황과 황후 어사진 봉대 232 [사11] 1942년 김철우, 중앙동에 가네다(金田)사진관 개업 234 [사12] 1945년 중학생 조명훈의 지도에 표시된 4개의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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