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4년 담양군문화재단이 기획하고 주관한 예술로 어울림 사업 "큰나무 문화예술 숨터"의 한 프로그램이었던 사운드배스(소리목욕)의 체험기이다. 소리목욕탕에서 소리선생과 함께 득음의 경지를 사운드배스(Sound Bath)? 우리 말로는 ‘소리목욕’으로 부르는 것 같다. 소리목욕? 그게 뭐예요? 어떻게 소리로 목욕을 해요? 궁금증이 저절로 생긴다. 일단, 소리로 목욕을 할 수 있다는 표현이 재밌다. 샤워기에서 음악이라도 흘러나오나? 목욕탕에서 음악 연주회를 한다는 것일까? 목욕탕이 음악 감상실이 되었단 말인가? 갖가지 상상력을 동원해 볼 수 있다. 상상은 자유고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재밌게 상상을 즐겨 보자.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금방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상상의 즐거움을 빼앗기기 때문에 궁금증을, 호기심을 간단하고 쉽게 풀어버리는 방법을 시작부터 권하고 싶지 않다. 당장 스마트폰을 집어 들어 검색창에 “사운드배스”를 입력해 보세요. 그럼 관련된 정보가 주르륵 화면에 뜰 거예요. 자, 이제 사운드배스, 소리목욕이 뭔지 아셨나요? ‘아, 이런 거구나’ 손쉬운 웹 검색만으로 얻고자 한 답을 찾았다면 이 글을 읽을 이유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말입니다. 소리목욕을 직접 체험해 본 적 있나요? 느낌이 어땠나요?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사운드배스를 일상에서, 특히 지방 소도시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다. 이런 사정을 고려한 것인지, 사운드배스/소리목욕은 타로 수업과 함께 담양군문화재단이 문화예술교육 사업에서 기획형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는지도 모른다. 사운드배스 체험은 8월 30일에 시작해 10월 4일까지 총 4회 진행되었다. 프로그램은 매회 같은 형식으로 금요일 저녁 7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사운드배스/소리목욕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체험하는지, 어떤 감각적 배움이 있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자. 9월 6일 금요일 저녁, 담양군 에코산업단지에서 소리로 목욕한다는 곳을 찾았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비가 적당히 내렸다. 8월 30일 사운드배스 첫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첫 참가자들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소리목욕을 기다리는 동안 프로그램 홍보물을 살펴보았다. 인쇄물에는 한 장의 이미지와 함께 “악기에서 펼쳐지는 소리 진동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목욕하듯 감싸주는 편안한 휴식 시간”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과연 어떤 소리 감각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을까? 마룻바닥에 7개 정도의 매트가 준비되었는데 네 명이 참석했다. 프로그램 진행 과정을 멀리서 지켜보는 것보다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소리목욕 강사는 하얀색 원형 카펫에 다양한 악기를 펼쳐놓고 앉았다. 참여자들은 부채꼴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깔아놓은 회색 매트를 자유롭게 차지하고 앉는다. 이로써 흡사 교실은 작은 공연장이 되었다. 참가자들은 짐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고 각자 원하는 매트를 편하게 앉아 소리목욕/연주를 기다린다. 모두에게 따뜻한 차가 제공되었고 향을 은근하게 피워 놓았다. 강사와 참가자들은 마주 보며 가벼운 담소를 나눈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지난 첫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고 느낌이 좋아서 또 한 번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참여 동기에 대한 참석자 모두의 짧은 생각을 들은 후 강사의 소개가 이어졌다. 소리 강사 김민철 씨와는 올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주최하고 전남문화재단이 주관한 ‘예술인파견-예술로’ 사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김민철 씨는 국악 타악기(장구와 북) 전공자로 광주를 중심으로 공연예술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현재 담양 대전면 한재골 초입에 있는 카페 “스포트라이트커피”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가가 운영하는 카페다 보니 음악공연과 전시회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카페 등에서 청음회(聽音會)와 사운드배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참여해 보지 못해 어떤 내용과 느낌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침 이번 예술로 어울림 사업에서 사운드배스를 진행하게 되었다니 잘됐다 싶었다. 요가나 명상 수행에서 소리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얼핏 알고 있었다. 소리목욕이라는 표현 대신 “소리요가” 또는 “소리명상”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때 사운드는 매우 정적이면서 고요하고 신비감이 감도는데 그 음(音)의 파장이 신체의 미세한 기관 또는 감각을 자극하고 공명시켜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래서 일찍이 치유와 치료의 수단으로 소리 악기가 사용되었다. 사운드배스와 다른 유형으로는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를 떠올려 볼 수 있다. “백색 소음”으로 풀이되는 이것 또한 집중력을 향상시킨다고 알려지면서 한국에도 널리 보급되어 있다. 다른 유형으로는 테라피의 용도가 아닌 사운드 자체를 예술적으로,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시연하는 실험적 예술의 형태도 있다. 이들을 ‘사운드아트’ 또는 ‘실험음악’ 등으로 부른다. 이 모두는 소리가 가진 물리적 현상을 심리적, 감각적으로 활용하고 조절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마침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주제가 “판소리”인데 소리-사운드를 예술가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작품에 사용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리에 대한 인류의 감각은 원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원초적으로 자연스럽게 길러진 것이다. 예컨대 바람 소리, 빗소리, 물소리, 천둥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를 접하면서 그에 대한 감각을 예술로 재현하거나 표현해 왔다. 사람의 발성 또는 육성도 마찬가지로 소리다. 사람의 몸(신체)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악기라는 말이 있다. 이것에 덧붙이자면 우리의 몸은 훌륭한 악기인 동시에 스피커이기도 하다. 외부의 소리를 받아들여 공명을 일으키는 울림통으로써 마치 블루투스 스피커처럼 작동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외부의 소리에 반응을 일으키는 공명 작용은 인간의 공감 능력과 연결된다. 종교적 의례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합창이나 독경(讀經) 소리는 참여자에게 공명을 일으키고 경건함 또는 웅장함 같은 감동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이제는 대형 콘서트장이나 심지어 시위 현장에서도 우리는 쉽게 그러한 공동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소리의 영역은 귀로 듣는 청각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감각으로까지 확장된다. ‘전율을 느낀다’는 표현은 소리의 자극이 우리 몸의 감각이나 신체리듬과 상호작용하는 공명현상을 일어날 때 흔히 사용된다. 국악 타악기 전문 연주가가 진행하는 사운드배스는 과연 어떨까? 궁금증이 일어났다. 실내조명이 꺼지고 은은한 향이 어느새 가득 퍼져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소리목욕이 시작된다. 이제 강사를 소리목욕의 ‘세신사(洗身師)’로 불러도 재미있을 듯하다. 대중목욕탕에서 목욕하러 온 사람의 때를 밀어주는 사람.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듯 참여자들은 소리세신사를 등지고 매트에 바로 눕니다. 머리는 소리세신사를 향하고 소리목욕에 집중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눈을 감는다. 이제 모든 감각을 청각에 내맡긴다. 소리세신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준비한 글을 천천히 읽어간다. 우선 그 목소리와 메시지에 집중하게 된다. “먼저 이 공간의 분위를 느껴보겠습니다. 또 이 공간의 에너지를 느껴봅니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쉬어 볼께요. …” 마치 최면을 거는 주술사처럼 소리세신사의 주문이 끝나고 짧은 정적 후 잔잔한 소리가 들려온다. 빗소리 같은 소리, 이어서 졸졸졸 물소리가 들려오고 파도의 소리가 점차 밀려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소리세신사의 안내에 따라 호흡을 조절해가며 긴장과 경계를 풀고 차분히 소리의 변화와 흐름에 집중해 본다. 그러나 집중은 쉽지 않다. 머릿속에서 오만 생각이 어딘가로 도망쳐 버리기 일쑤다. 그것을 다시 잡아다 놓고는 소리에 집중한다. 천둥치는 소리에 저 멀리 가 있던 정신을 돌이킨다. 어쩔 수 없이 소리에 따라 연상되는 풍경들을 계속해 지어내 본다. 그 풍경의 어떤 장면들은 내가 잊고 있었던 어떤 과거의 기억이었음을 깨닫는다. 과거의 어떤 장소에서 보았던 풍경이거나 혹은 내가 보았던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일 것이다. 이미지는 소리의 속도와 동기화되어 슬로우 모션으로 재생되기도 한다. 다시, 바로 지금의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마룻바닥에 바로 누워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그러나 바르게 몸을 펴고 편히 누울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오십견이 아직 낫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 본다. 행여 옆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 움직이는 것도 조심스럽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오래 누워있을 수 없다. 하지만 꾸욱 참아내야 한다. 천정에 달린 에어컨의 기계음은 평상시 같았으면 거슬리지도 않을 법한데, 소리에 민감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써진다. 실내 온도를 조금 낮게 설정한 것은 아닌지 한기마저 느껴진다. 옆에 누워있는 여성 참여자는 소리목욕에 푹 빠져버렸던지, 많이 피곤했던지 코를 골며 잠들어 버렸다. 아! 어느 소리에 집중해야 할지 청취의 방향을 잃어버린 듯했다. 나 역시 적잖이 피곤했다면 아마도 이 여성 참여자처럼 잠들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깊은 잠은 건강에 좋은 것 아닌가. 이런 소리 연주라면 수면제를 들이켜는 것처럼 잠들어 버리는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건물 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얼마나 힘차고 아름다운가. 밤이 깊어간다. 다시 소리에 집중해 본다. 소리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가까이 들렀다 가도 뒤로 멀어져 가기도 한다. 높이 치솟았다가 낮게 퍼지기도 하고 메아리치듯 울리기도 하고 고요하게 고였다가 다시 흘러 내려간다. 시간도 제법 흘러간 듯하다. “천천히 눈을 떠볼게요.” 태초에 신의 음성이 있었으니 그것도 소리다. 소리로 이 세계가 만들어진 것과 같다. 심봉사가 끔적끔적하고 눈을 뜨듯 소리세신사가 소리목욕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에 참여자들은 감았던 눈을 뜬다. 소리목욕은 약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기지재를 펴며 몸을 일으켜 세워 처음의 상태로 앉는다. 참가자들의 낯빛이 처음과는 달라졌다고 한다. 이제 소리세신사에서 ‘소리선생’으로 바뀐 듯, 어떤 변화를 감지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 역시 기분이 한결 좋아졌고 몸이 가벼워졌음을 고백한다. 도란도란 각자의 소감을 나눴다. 공통적으로 처음에는 소리에 집중하려고 애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허리가 아파서 오래 못 누워있었지만, 최대한 소리에 집중하려고 했고, 보이지 않는 소리를 통해서 우주를 느끼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는 소감도 있었다. 두 번째 소리목욕에 참여했다는 참가자는 소리보다는 피워놓은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고도 했다. 소감을 나눈 뒤 소리선생은 악기를 하나씩 소개하며 악기의 이름이 무엇이며, 어떤 소리를 내는지,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 하나하나를 시연하면서 오늘의 소리목욕을 리뷰했다. 빗소리를 냈던 “레인스틱”, 파도 소리를 냈던 “오션드럼”, 천둥번개 소리를 냈던 “스프링드럼(썬더드럼)”, 악기의 이름이 곧 소리 효과를 의미했다. 나무 열매 같은 것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손으로 건드리면 부딪히면서 졸졸 물소리를 냈던 것은 “워터폴 차임”이라는 악기다. 그리고 사운드배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울림 악기 “싱잉볼”과 전통악기의 하나인 “정주”와 “요령” 등이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눈을 감고 누워서 소리에 집중해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무엇에 감각을 집중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새삼 깨닫는다. 특히 청취, 청음의 소리감각이 놀랍도록 예민한 것이며, 시각감각과 비교해 보면 더 큰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듯하다. 기회가 된다면 소리 악기를 하나씩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에 눈을 떠보게 된 특별한 소리수업이었다는 생각에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2024.11. 이명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