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고는 2021년 경남 하동 악양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 참여 작가 한유미 작업에 관한 소고이다.) 한유미 드로잉 작업론 자유의 제스처, 선과 색으로 감각하기 11월 끝 날, 하동 악양창작스튜디오를 가기 위해 순천집을 나섰다. 악양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크게는 옆 동네 광양과 하동을 거쳐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있고, 윗동네 구례 쪽을 통과해 섬진강을 따라 쭈욱 내려가는 길이 있다. 그 길에도 다시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처음 가는 길이 아니라면 내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내키는 대로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가속과 감속, 일시 멈춤과 직진 주행, 좌회전과 우회전, 긴 커브를 돌거나 짧은 커브를 돌 때,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릴 때, 갈림과 교차하는 지점에서 가야할 방향을 즉각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잠깐 차를 세우고 기지개를 켜고 풍경을 한껏 바라볼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운전술에서 방향감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 인생도, 예술에서도 방향이 중요하다. 악양창작스튜디오에 도착해 2021년 레지던스 결과공유전을 둘러보고 한유미 작가의 안내로 2층 오픈스튜디오에 입장했다. 작업 공간에는 장판처럼 돌돌 말아둔 큰 도화지 더미가 많았다. 작가에게 가장 든든한 밑천일 것이다. 서양화 캔버스와 수 권의 드로잉북, 폭이 1미터쯤 되어 보이는 두루마리 도화지에서 그동안 작업의 흔적을 엿 볼 수 있었다. 지난 5월, 레지던스 공모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었기 때문에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아니었다. 오픈스튜디오에서 실제 작품을 대할 수 있었다는 것이 달랐다. 인터뷰 심사에서 보았던 드로잉 중심의 작품들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화면 스케일이 커졌다. 넓은 작업실에서 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작가의 말이 기억났다. 작가는 악양레지던스에서 그 원을 풀었을까? 작업에 변화는 없었을까? 궁금증을 풀기위해 스튜디오에서 작가와 마주 앉아 약 2시간 동안 대담을 진행했다. 나는 작가가 언제 그림을 시작했고, 현재의 드로잉 작업을 언제, 어떻게 자신의 작업으로 삼았는지를 물었다. 한국에서의 입시미술교육, 애니메이션에 관한 관심, 프랑스 유학에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지금의 작가의 드로잉 연구는 프랑스 미술학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드로잉은 그리기의 기초이면서 그 자체가 회화의 한 스타일로 일찍이 인정되었다. 특히 대상을 객관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대상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나 감정, 무의식 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추상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이 드로잉을 특히 선호하였다. 드로잉(drawing)은 '그리다'의 의미와 함께 ‘뽑아내다’ ‘이동하다’ ‘움직이다’의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예술가들이 새로운 영감을 즉각적으로 ‘뽑아내는’ 것에 드로잉이 효과적이다. 움직임에 관해서는 연필이나 목탄, 붓과 같은 그리기 매체를 지지하고 제어하는 손가락은 물론 손목과 팔, 어깨로 이어지고 급기야 신체 전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제스쳐(gesture)’나 ‘액션페인팅’과 같은 용어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유미 작가의 드로잉을 보면 작가의 ‘움직임의 궤적’이 보인다. 그 궤적을 따라가 보았다. 무엇을 표현했는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감각적인 드로잉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상하좌우로 빠르게 혹은 느리게, 강하게 혹은 약하게, 꺾임과 멈춤, 원과 직선의 운동 등 다양한 움직임이 그 궤적에 기록되어 있다. 작가의 드로잉을 보면서 나는 동양의 붓놀림을 떠올렸다. 나도 한때 동양화를 배웠으니, “경력단절” 예술가라 할 것인데,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회화 미학의 최정점이라 할 수 있는 서예를 생각해 보았다. 글씨와 그림은 같은 근원이라고 생각했던 동양미학에서 서화론(書畫論)은 특히 매체인 붓의 사용법-필법(筆法)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심지어 살과 근육, 뼈와 같은 신체의 사용을 통해 작품을 분석하기도 한다. 또한, 서예의 붓놀림-운필(運筆)이 춤을 추는 것과 같고 검법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여 신체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반영하였다. 인간의 신체란 우주의 조화로서 생성된 것이므로 신체의 움직임은 곧 우주의 움직임인 것이다. 따라서 신체의 사용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과 연결된다. 멈췄다가 움직이고, 빠르게 혹은 느리게 움직이다가 쉬었다가 어디론가 향해 달음질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서는 멈춘다. 모든 움직임은 고요함과 활발함을 연속적으로 가진다. 어떤 것은 한숨에 일어나고, 두숨, 세숨, 여러 숨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서양의 추상표현주의가 동양의 서예술과 만났던 지점도 이러한 기운생동 붓놀림과 드로잉의 운동성이 가진 미학이 유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유미 작가와의 대화는 정물이든 동물이든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자동기술적 드로잉의 문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 작가는 아직까지 국내에서 개인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에게 개인전은 거쳐야 할 문(門)이다. 누군가에게 작품을 공개하고 평을 듣는다는 일은 예술가의 숙명과도 같다. 그 자리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쌓아왔던 드로잉 작품(드로잉 아카이브)을 차분히 다시 살펴보면서 분류작업-큐레이션을 해 보면 엉켰던 생각이 다소 정리될지 모르겠다. 비슷해 보이는 작품 간 ‘차이’를 발견해 내는 것과 그것을 언어화하는 연구도 병행한다면 더욱 좋겠다. 글_이명훈(예술공간돈키호테 큐레이터) 2021.12. |